인터넷 편지 -두터움과 얄상함-
신병교육대에서, 주중에, 18시마다 생활관별로 인편을 배부해줬다. 매일, 꽤 두툼한 양이 우리 생활관에 도착했는데, 배달부를 자처하는 이들이 매번 나서서 인편의 주인을 찾아주곤 했다.
많이 받는 훈련병은 하루에도 수십 장을 받았고, 적게 받는 훈련병은 하루에 한 장, 두 장, 아니면 그마저도 없는 날도 있었다. 나 또한, 굳이 따지자면, 적게 받는 축에 속했다. 나에게도 인편 한 장 없는 날이 있었다. 그럴때마다, 나의 인간관계 지수가 수치화되어, 생활관에 공개되는 것 같아서 왠지 부끄러웠다.
한편, 내 맞은편 침상을 쓰던 훈련병은, 아마 우리 중대에서 가장 많은 인편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은 인편을 받았다. 그가 모은 인편은 두툼했고, 내가 모은 인편은 얄상해서, 그 차이를 보며 생각했다.
두툼하구나! 그들이 쌓아올린 인생과 인간관계, 그에 비하면 나는 무엇인가. 같은 시간동안 초가집을 쌓았나, 나무다리를 지었나. 물론 나에게도 꾸준히 편지를 보내준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지만, 왠지 자존심 상해서, 비굴해지는 길을 선택했다.
몇몇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짧게라도 좋으니 인편 자주 보내달라고. 의미 없는 내용이어도 좋으니, 친구 가오 좀 살려달라고. 다음에 너네가 훈련병 신분이 되었을 때, 내가 받은 두 배, 아니 세 배로 보내주겠다고. 훈련소에서 느낀 가장 고마운 친구는, 인편을 많이 써주는 친구라고, 등등. 끝없이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내가며 인편 수가 내게 얼마나 절절하게 다가오는가를 설명했다.
친구 셋의 반응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S.
실제로 꾸준히 보내줬고, 전화 통화 이후, 더 잦은 빈도로 보내줬다. 훈련소 간, 가장 많은 인편을 보내준 친구.
C.
원래는 이런 것 귀찮아하는 친구, 그래도 한번 폭발하면 활활 타오르는 친구. 짧게 보내달래도, 문장을 길게 토해내며 묵직하게 두 장 꽉꽉 채워 보내줬다.
O.
푸하핫 웃음을 터트리며, 인편 적게 받는 것으로 주변의 눈치나 보냐고, 왜 신경쓰냐고. 너도 이 상황에 처해봐야 안다고, 반론하고 싶었지만, 워낙 주변 의식을 하지 않는 주관 강한 친구고, 십자인대 파열로 훈련소에 갈 일도 없으므로 말을 삼켰다. 내가 노래 가사라도 보내달라고 하자, 내가 좋아하는 노래, 그가 좋아하는 노래, 번갈아가면서 보내줬다. 그리고 긴 텀을 두고, 그의 인생 고민을 꾹꾹 눌러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대충 답장은 썼지만, 지금껏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그의 고민이 나를 군대로 도망치게 한 고민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에.
아무튼, 전화를 돌려서, 조금 더 많은 인편을 받게 됐지만, 비교할 수 없는 자들(수백장의 인편을 모은 훈련병)에게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나의 찌질했던 생각과 전화에 웃음이 나왔고, 인편 수에 의식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남들이 인편을 읽을 때, 내 몫의 인편을 진중히 읽고, 남은 시간에 진중문고를 읽었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 나도 두툼하게 받았다. 세계의, 세기의 작가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보낸 유리병 편지, 그것이 나에게 도달했다. 멋진 신세계, 어린 왕자, 이방인 등의 고전이나, 습관을 주제로 하는 자기계발서 등이 책장에서, 내게 뽑혀들고, 읽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받는 만큼 쓰고 있던 내 앞자리 훈련병을 보고, 나도 읽은만큼 쓰기로 했다. 나도 유리병에 편지를 담기로 했다. 우선 훈련소에서는 전파 방법이 별달리 없었으므로, 주변 동기에게 내가 쓴 하찮은 글들을 조심스럽게 소개해주었고, 많은 동기들이 내 글에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읽어주었다. 너무나 고마웠고, 감격이었다.
그리고 S의 소개로 티스토리에, 내 유리병 편지를 띄우게 되었다. 여기저기에서 읽힐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
S와, 매일 밤 연등을 같이 해온 K, 하찮은 글 읽어준 훈련소 동기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연등
군대 저녁 점호 이후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해주는 제도